일본 하시마섬 군함도 역사왜곡 유네스코 등재라니 안돼!


1940년대 조선인 강제 징용이 대규모 이루어진 이 하시마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요.


2015년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측에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일부에서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 의사에 반하게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인정받았습니다.

일본 하시마섬 일명 군함도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시마 섬(端島はしま)은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에 있는 무인도입니다. 


섬의 모습이 마치 군함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군칸지마(軍艦島ぐんかんじま, 군함도)라고도 불립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석탄 노동을 시켜 대한민국에게 안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또한 1960년대까지 탄광 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폐산 이후 주민들이 이주하였으며, 섬에는 당시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9세기에 석탄의 존재가 확인됐고 1890년부터 미쓰비시재벌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석탄을 채굴하려고 주위를 매립했고 다이쇼 시대 이후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 주택이 건설됐습니다.


추정하건대 1943년에서 1945년까지 조선인 연인원 약 500명에서 800명이 이곳에 징용되어 노역에 동원됐습니다.


조선인 5만 7900여 명이 강제 동원됐던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등 7개 시설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됐습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인 1162 명, 한국인 122 명, 중국인 15 명이 화장 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인구가 전성기를 맞았던 1960년에는 5,267명이 하시마에 거주하여, 인구 밀도는 제곱 킬로미터당 83,600명으로 도쿄 23구의 9배 이상에 달했습니다.


탄광 시설, 주택, 초중학교, 점포, 병원, 사원, 영화관, 이발소, 미용실, 사교장 등이 있어 섬 안은 완벽한 도시 기능을 구비했으나 화장장, 장지, 충분한 넓이와 시설이 있는 공원은 하시마 안에 없어서 하시마와 다카시마 사이에 있는 나카노시마에 건설되었습니다. 


1960년 이후에는 주요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어감에 따라 쇠퇴해 갔습니다.


1965년에 미츠세 구역의 신광이 개발돼 일시 회복되는 듯 했지만, 1970년대 이후 에너지 정책에 영향받아 1974년 1월 15일 폐산했습니다.


폐산 시에는 약 2,000명까지 줄었던 주민은 4월 20일까지 모두 섬을 떠나, 하시마는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다카시마 광업소의 잔무 정리를 위시한 탄광 관련 시설을 해체하는 작업은 1974년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약 5년 뒤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엔 당초 약속과 달리, 강제동원 피해를 부정하고 "하시마(일명 군함도)에선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왜곡된 내용의 영상·기록물이 버젓이 전시돼 있습니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현장인 군함도를 포함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요구하는 서한을 유네스코에 보낼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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